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추진한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세종시가 건설되고 혁신도시가 선정되었으며, 균형발전특별회계가 5조 원에서 13조 원 규모로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되었습니다. 인구 과반, 취업자 과반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전체 수출의 72%, 경제성장률의 70%를 수도권이 담당하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기회발전특구 사업을 통해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엉뚱한 곳에 쓰이는 지방소멸대응기금

지방소멸대응기금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10년 동안 매년 1조 원씩 10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 지원되는 재원입니다. 인구소멸을 막고 지역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충남 논산시는 금강을 가로지르는 황산대교에 야간조명을 설치하는 데 15억 원을 사용했습니다. 전남 화순군은 음악분수를 만드는 데 59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경남 창녕군은 이미 2개의 파크골프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파크골프장을 건설하는 데 45억 원을 지출했습니다. 논산시는 육군 병장 조형물을 세우는 가로수길 조성에 20억 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전문가는 "지방선거를 거치고 난 후 심사한 서류 대부분이 지자체장의 공약사항으로 보이는 사업들이었다"며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사업들이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자체 단체장들이 예산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들의 공약사업을 기금 사업으로 포장해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전남 강진군의 출생아는 육아수당 시행 이후 크게 늘었지만 인구 감소세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

물론 지방소멸 대응을 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한 지자체들도 있습니다. 전남 화순군은 공실로 남아있던 공공임대아파트를 청년들에게 월 1만 원에 재임대하는 '청년 만 원 아파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남 강진군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육아수당 6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해 출생률을 1.7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전북 남원시는 청년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공립학원을 세워 무상으로 학원 수업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지자체의 인구 감소 추세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청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계속해서 지역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원시가 벤치마킹하려는 순창군의 공립학원도 10대 청소년의 유출을 일시적으로 유예시키는 데 그쳤을 뿐, 2~30대 청년의 유출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수도권 집중의 가속화, 화성시의 사례

비수도권 지역이 지방소멸을 걱정할 때, 경기도 화성시는 최근 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인구가 40만 명이나 증가한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 기아차를 포함해 반도체와 바이오, 제약 등 첨단 산업 분야에 4,8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습니다. 일자리가 많으니 청년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다시 기업들이 들어서며 주택단지가 조성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지식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고급 인적자원이 밀집한 수도권의 집중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수도권에는 GTX 같은 광역교통망 사업에 13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지방소멸 대응에 투입하는 10년 10조 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전북 남원시가 지방소멸대응기금 150억 원을 들여 세울 예정인 공립학원의 조감도 모습.

거점도시 육성 없이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특구 사업을 통해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선정된 지역들을 보면 부산, 대구, 대전 같은 광역시뿐 아니라 포항, 상주, 구미, 안동, 전주, 익산 등 전국의 중소도시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도권 집중 완화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식서비스 산업이 대도시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여러 도시를 균형감 있게 키우려고 하면 대도시 집적효과가 사라진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 비수도권 중소도시의 생산율을 각각 1%씩 올렸을 때, 전국적인 GDP 상승효과는 비수도권 대도시의 생산율을 올렸을 때가 가장 컸습니다.

조금씩 여러 곳에 지원하기보다는 집적의 효과가 생길 수 있도록 소수 거점도시에 집중해야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같은 지역 거점도시조차 수도권에 청년들을 빼앗기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정책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