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07개 시·군·구가 인구감소 대응이 필요한 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지방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 과제가 되었습니다. LH토지주택연구원이 발표한 최근 연구 결과는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시합니다. 핵심은 명확합니다. 출산 장려나 인구 유입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며, 청년이 지역에 머물 수 있는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를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방소멸 위험, 무엇이 결정하는가

연구진은 2022년 전국 시·군·구를 대상으로 인구, 사업체 수, 재정자립도, 노후주택 비율, 문화·의료·보육시설 등 20개 지표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방소멸 위험을 좌우하는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었습니다. 인구·경제 기반, 재정·복지 제도, 생활환경·복지 인프라, 그리고 지역유지 기반입니다. 이 중에서도 청년인구 순이동률과 출생률, 노후주택 비율을 포함한 지역유지 기반의 영향력이 가장 컸습니다.

사업체가 많고 일자리가 풍부하며 청년층이 지역에 남거나 새롭게 유입되는 곳일수록 지방소멸 위험이 낮았습니다. 또한 문화시설, 의료기관, 복지시설과 같은 생활 인프라도 인구를 붙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지방재정과 복지제도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었지만, 다른 요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작았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소멸 원인, 맞춤형 대응이 필수

흥미로운 점은 같은 정책이라도 지역에 따라 효과가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수도권과 주변 지역에서는 생활환경과 복지 인프라가 지방소멸 위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습니다. 반면 대전과 충청권에서는 인구·경제 기반과 청년 이동 등 지역유지 기반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호남과 남부 내륙 농·산·어촌에서는 청년 유출과 출생 기반 약화가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영남권에서는 인구·경제 기반과 재정·복지 제도가 함께 작용했으며, 강원 동부는 생활 인프라의 지역별 편차가 두드러졌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전국 시·군·구를 14개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광역자치단체 경계가 다르더라도 지방소멸 원인과 여건이 비슷한 지역은 같은 유형으로 묶였습니다. 이는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별 일률 지원보다, 비슷한 문제를 가진 지역을 연계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시사합니다.

청년을 붙잡을 일자리와 정주 환경이 열쇠

이창효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방소멸 대응 정책이 단순 출산률 증대나 인구 유입을 넘어, 경제적 측면에서의 고용 기회 확대와 지역 생활환경 인프라 및 서비스 질적 수준 향상을 포함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청년이 지역에 정착하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일자리가 지속 가능하려면 산업 기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동시에 의료, 문화, 보육 등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필수 서비스가 충분히 갖춰져야 합니다.

또한 노후주거 환경 개선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래된 주택이 많은 지역은 청년층에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거 환경 정비와 함께 교통, 문화, 의료 인프라를 보강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습니다. 인접 지자체가 일자리와 교통·의료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하는 광역 대응도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지역 연계와 공동 대응 전략의 필요성

연구진은 일부 시·군·구가 서로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어, 지방자치단체 간 정책적 연계나 공동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 유출이 심각한 농촌 지역들은 함께 청년 일자리 창출과 정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들은 인접 지역과 협력하여 의료, 문화 시설을 공동으로 구축하고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지방소멸은 단일한 원인이나 해법이 없는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과 지역 간 협력이 뒷받침될 때, 청년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고 머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국에 동일한 정책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가진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찾아 실행하는 일입니다.